사회에서 경쟁에서 살아남는다는 의미가 멀까?
철수형말이 생각난다
"서울대 의대에 최연소 의학박사에 나는 스무살의 인생을 뒤돌아 보니 나를 위한 인생이 아니라 남이 보기좋은 사람이 되기위한 인생을 살았다. 내가 갑자기 의사생활을 그만두고 회사를 차리게 된건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깨달았으며 이제는 나를 위한 인생을 살아야겠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가식적으로 남들에게 잘보이기 위해서 하는 멘트는 아닌것 같다
우리가 경쟁에서 살아남고 남들이 봤을 때 그럴듯한 무엇인가를 이룰려고
적성에도 맞지 않는데 용을 쓰면서 살아가는것도 어찌보면 그 사람들의 가치관일 것이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것을 흑백 나누듯이 나눌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면서 사는것도 어찌보면 그사람들의 삶의 기준인 것이다
바꿔라 마라 강요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나또한 그렇게 살고 있다.
가끔 생각해보면 안정적인 직장에 편하게 사는것이 좋아보이다가도
한번사는 인생인데 정말 밋밋하게 재미없게 산다는 생각을 하면
아깝기도 하다. 물론 예전에 우리 이사님 같은 경우는 다시태어나도 회사원이 되고 싶다라고 하신분도 있다.
이런 분들은 회사원을 하시면 되는것이다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성공한 사람이야 말로 정말 행복한 사람이겠지만
그런 사람들은 좋아하는것을 하는것데 만족하는 것일까? 아니면 성공까지 했기때문에 만족하는 것일까?
SBS에서 몰입이라는 프로그램을 보면 대부분 하고싶은 것을 하는것 자체에 만족하는 사람이 많이 나왔다.
자기는 카튜닝이 너무 좋아서 자기돈 몇천만원씩 들여서 매일 튜닝에 빠져살았는데 지금은 카 튜닝 전문 컨설턴트로 명성을 날리고 있다고 한다.
여기서 중요한게 이렇게 성공한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우리 멋대로라는 것이다
이렇게 몰입하신 분들은 내가 하고싶은것을 했다...가 중요한 포인트이며 성공은 부수적인 것인데 이것을 바라보는 관람자들은 멋대로 성공에 포커스를 맞춘다
이것 또한 사물을 바라보는 사람의 가치관 차이일 것이다.
어떻게 사는 방법 중 무엇이 옳든, 한가지 변하지 않는 사실이 있다
하고 싶은것을 하면 행복하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진리인 것이다.
게다가 성공까지 하면 금상첨화이지 않은가?
또다른 철수형의 어록이다
칭찬이든 비난이든 다른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보다는,
내스스로가 값지다고 생각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면 그것으로 의미가 있는 것이지,
칭찬, 비난을 특별히 의식할 필요가 없다.
내스스로가 값지다고 생각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면 그것으로 의미가 있는 것이지,
칭찬, 비난을 특별히 의식할 필요가 없다.
미술평론가 이주헌씨는 또 이렇게 성공을 정의하기도 했다
행복한 사람이 성공한 사람
널리 알려져 있듯 블루오션이란 경쟁자가 없는 시장을 의미한다. 『블루오션 전략』의 저자 김위찬 교수와 르네 마보안 교수는 블루오션 전략의 핵심이 차별화와 비용의 우위를 동시에 추구함으로써 가치 혁신을 이루는 것이라고 말한다. 혁신이 ‘전가의 보도’처럼 운위되는 기업 현장에서 블루오션을 향한 기업들의 노 젓기는 가위 필사적이다. 그런데 이런 블루오션 전략이 꼭 시장에서만 필요한 것일까? 개인의 삶을 경영하는 데 있어서도 이런 블루오션 전략이 필요하지 않을까?
흔히 나의 진정한 경쟁 상대는 나 자신이라고 한다. 자신을 극복하지 못하는 사람은 꿈을 이룰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나와 경쟁한다. 문제는 나와의 경쟁이 곧잘 끝없는 레드오션으로 나를 몰아간다는 것이다. 노력하면 할수록 삶이 힘겹고, 치열하게 살면 살수록 인생이 고달프다. 베짱이가 되지 않고 개미가 되려고 부단히 노력했는데 이 무슨 안타까운 결과인가?
흔히 놀려고 하는 나, 즐기려고 하는 나는 가차 없이 배제돼야 할 대상으로 취급된다. 그런 ‘게으른 나’를 극복하지 못하면 인생은 암울해진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특히 입시지옥을 통과해야 하는 청소년들에게 이런 가치가 공공연히 주입된다. 과연 끝없는 노력만이 나를 진정으로 행복하게 하는 길일까?
사람은 놀 때 행복하다. 사람만이 아니다. 모든 피조물은 놀 때 행복하다. 잘 놀려면, 제대로 놀려면, 놀 때만큼은 나를 잊어야 한다. 내가 나의 극복 대상이고, 내가 나의 경쟁 대상인 한 나는 행복하지 못하다. 나를 의식하고 사는 삶은 피곤하다. 그 나는 진정한 내가 아니다. 그런 나를 잊어야 진정한 내가 나를 주재한다. 저명한 삶의 질 연구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이처럼 진정한 내가 나를 주재하는 현상을 ‘몰입(flow)’이라고 불렀다. 놀지 않고는 몰입할 수 없다. 의식하고 경쟁하고 싸우노라면 신경이 곤두서고 행복감은 멀리 사라진다. 강박관념은 커질망정 몰입의 경험은 적어진다. 남의 성공과 행복을 질시하고 나 자신의 존엄과 재능을 평가절하하게 된다.
참된 몰입 속에서 우리는 진정한 나, 곧 나의 기원(origin)과 만난다. 어린 사자 새끼들이 놀 때 무슨 놀이를 하는가? 사냥놀이다. 어린 얼룩말 새끼들이 놀 때 무슨 놀이를 하는가? 뜀뛰기놀이다. 다 자신의 기원으로 돌아가는 행위다. 이렇게 기원으로 돌아가면 그 존재는 오리지널(original)해진다. 어떤 존재든 자신의 근원과 본질을 제대로 드러내면 그는 오리지널해질 수밖에 없다. 치열한 경쟁시대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차별화에 있다고 하는데, 오리지널한 존재는 굳이 남을 의식하거나 스스로를 차별화하려 하지 않아도 자연히 차별화된다. 그는 오리지널하기 때문이다.
오리지널한 삶을 사는 것, 그것이 바로 블루오션의 삶을 사는 것이다. 오리지널한 나는 타인과 적대적으로 겨룰 필요가 없는 독자적인 인생을 살아나갈 것이다. 무경쟁의 무대, 블루오션의 항해자가 될 것이다. 우리가 아이들의 적성과 소질, 취향 등 각자의 오리지널리티를 진정으로 존중하는 교육을 펼쳐 왔다면,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악명 높은 교육의 레드오션을 만들어 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많은 돈을 쏟아 부어 교육하는데 왜 아이들은 그만큼 행복하지 못한가?
노력이 다가 아니다. ‘세일즈의 신’이라 불리는 하라이치 헤이는 “남보다 많이 걷고 뛰었고, 세일즈하지 않을 때는 세일즈 이야기를, 그 이야기조차 하지 않을 때는 세일즈 생각을 했다”고 성공 비결을 밝혔다. 혹자는 그것을 노력의 결과로 해석한다. 나는 그가 제대로 논 결과로 해석한다. 노력만으로는 저렇게 미치기 어렵다. 노력만으로는 축구선수가 골대에 골을 잘 넣을 수 없다. 그 일이 자신의 기원과 이어져 있었기에 하라이치는 한바탕 인생을 잘 놀았다. 성공한 사람이 다 행복한 사람은 아니지만, 행복한 사람은 다 성공한 사람이다.
출처:중앙일보 이주헌 미술평론가
널리 알려져 있듯 블루오션이란 경쟁자가 없는 시장을 의미한다. 『블루오션 전략』의 저자 김위찬 교수와 르네 마보안 교수는 블루오션 전략의 핵심이 차별화와 비용의 우위를 동시에 추구함으로써 가치 혁신을 이루는 것이라고 말한다. 혁신이 ‘전가의 보도’처럼 운위되는 기업 현장에서 블루오션을 향한 기업들의 노 젓기는 가위 필사적이다. 그런데 이런 블루오션 전략이 꼭 시장에서만 필요한 것일까? 개인의 삶을 경영하는 데 있어서도 이런 블루오션 전략이 필요하지 않을까?
흔히 나의 진정한 경쟁 상대는 나 자신이라고 한다. 자신을 극복하지 못하는 사람은 꿈을 이룰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나와 경쟁한다. 문제는 나와의 경쟁이 곧잘 끝없는 레드오션으로 나를 몰아간다는 것이다. 노력하면 할수록 삶이 힘겹고, 치열하게 살면 살수록 인생이 고달프다. 베짱이가 되지 않고 개미가 되려고 부단히 노력했는데 이 무슨 안타까운 결과인가?
흔히 놀려고 하는 나, 즐기려고 하는 나는 가차 없이 배제돼야 할 대상으로 취급된다. 그런 ‘게으른 나’를 극복하지 못하면 인생은 암울해진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특히 입시지옥을 통과해야 하는 청소년들에게 이런 가치가 공공연히 주입된다. 과연 끝없는 노력만이 나를 진정으로 행복하게 하는 길일까?
사람은 놀 때 행복하다. 사람만이 아니다. 모든 피조물은 놀 때 행복하다. 잘 놀려면, 제대로 놀려면, 놀 때만큼은 나를 잊어야 한다. 내가 나의 극복 대상이고, 내가 나의 경쟁 대상인 한 나는 행복하지 못하다. 나를 의식하고 사는 삶은 피곤하다. 그 나는 진정한 내가 아니다. 그런 나를 잊어야 진정한 내가 나를 주재한다. 저명한 삶의 질 연구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이처럼 진정한 내가 나를 주재하는 현상을 ‘몰입(flow)’이라고 불렀다. 놀지 않고는 몰입할 수 없다. 의식하고 경쟁하고 싸우노라면 신경이 곤두서고 행복감은 멀리 사라진다. 강박관념은 커질망정 몰입의 경험은 적어진다. 남의 성공과 행복을 질시하고 나 자신의 존엄과 재능을 평가절하하게 된다.
참된 몰입 속에서 우리는 진정한 나, 곧 나의 기원(origin)과 만난다. 어린 사자 새끼들이 놀 때 무슨 놀이를 하는가? 사냥놀이다. 어린 얼룩말 새끼들이 놀 때 무슨 놀이를 하는가? 뜀뛰기놀이다. 다 자신의 기원으로 돌아가는 행위다. 이렇게 기원으로 돌아가면 그 존재는 오리지널(original)해진다. 어떤 존재든 자신의 근원과 본질을 제대로 드러내면 그는 오리지널해질 수밖에 없다. 치열한 경쟁시대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차별화에 있다고 하는데, 오리지널한 존재는 굳이 남을 의식하거나 스스로를 차별화하려 하지 않아도 자연히 차별화된다. 그는 오리지널하기 때문이다.
오리지널한 삶을 사는 것, 그것이 바로 블루오션의 삶을 사는 것이다. 오리지널한 나는 타인과 적대적으로 겨룰 필요가 없는 독자적인 인생을 살아나갈 것이다. 무경쟁의 무대, 블루오션의 항해자가 될 것이다. 우리가 아이들의 적성과 소질, 취향 등 각자의 오리지널리티를 진정으로 존중하는 교육을 펼쳐 왔다면,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악명 높은 교육의 레드오션을 만들어 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많은 돈을 쏟아 부어 교육하는데 왜 아이들은 그만큼 행복하지 못한가?
노력이 다가 아니다. ‘세일즈의 신’이라 불리는 하라이치 헤이는 “남보다 많이 걷고 뛰었고, 세일즈하지 않을 때는 세일즈 이야기를, 그 이야기조차 하지 않을 때는 세일즈 생각을 했다”고 성공 비결을 밝혔다. 혹자는 그것을 노력의 결과로 해석한다. 나는 그가 제대로 논 결과로 해석한다. 노력만으로는 저렇게 미치기 어렵다. 노력만으로는 축구선수가 골대에 골을 잘 넣을 수 없다. 그 일이 자신의 기원과 이어져 있었기에 하라이치는 한바탕 인생을 잘 놀았다. 성공한 사람이 다 행복한 사람은 아니지만, 행복한 사람은 다 성공한 사람이다.
출처:중앙일보 이주헌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