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한국은 어떻게 일어설 것인가]
(8ㆍ끝) 신인류의 탄생
`호모 헌드레드`가 온다…축복인가 재앙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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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인들에게 '인생 50년'은 별로 새로울 게 없는 말이었다.
그만큼 기대수명이 짧았다.
한국인의 평균 수명도 불과 반세기 전에는 50세 안팎이었다.
그러던 것이 그동안 꾸준히 늘어 지금은 80세에 가깝다.
100세 이상 인구도 10여년 전에는 500명이 채 안 됐지만 지금은 2000명을 넘는다.
의학 기술과 생명공학의 발달로 빠르면 30년쯤 후에는 인간 평균수명이 100세에 이르는 시대가 열릴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벌써부터 '9988234(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 2,3일만 앓다 죽자)'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지 않은가.
'인간수명 100세 시대'는 인류 역사상 전대미문의 일이다.
5만년 전 아프리카에 살던 현 인류의 조상이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생각하는 인간)로 불린 것에 빗댄다면 '호모 헌드레드(Homo Hundred·100세를 사는 인간)'라고 부를 만한 '신(新) 인류'의 출현이다.
하지만 이를 첨단과학과 사회발전이 가져다준 축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오랫동안 생을 영위하는 것이 과연 삶의 질 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일까.
많은 전문가들은 준비 없이 맞이하는 장수사회가 자칫 개인과 사회 모두에 재앙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경고하고 있다.
기대수명이 길어지면서 과거의 사고방식과 생활양식을 기반으로 한 생애 프로그램이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당장 '제2의 인생'을 어떻게 살지부터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지금처럼 60세쯤 은퇴하고 이후에는 노후를 즐기겠다는 생각은 수명 100세 시대에는 통하지 않는다.
한 사람이 평생 다니는 직장도 지금은 기껏해야 5~6군데 정도지만 앞으론 훨씬 늘어날 수밖에 없다.
호주 정부는 15년쯤 후에는 한 사람이 평생 경험하는 직장이 '파트타임'을 포함해 30~40군데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그만큼 평생교육의 중요성이 커졌다.
국회 시사포럼이 '매력 있는 한국' 보고서에서 "직업훈련을 단순히 실업자 구제나 취업대책으로 간주할 게 아니라 생애교육 차원으로 격상해야 한다"고 지적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50세가 됐든,아니면 60세가 됐든 적당한 시기에 노인으로서 수십년을 살아가야하는 데 따른 별도의 교육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른바 노후 대책도 많이 달라져야 한다.
우재룡 한국펀드평가 사장은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몇 살까지 사실 생각이세요? 노후준비는 돼 있나요? 만약 준비가 안 돼 있다면 오래사는 건 축복이 아니라 위험입니다"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자식들에게 의지하기도 쉽지 않다.
부모가 30살에 아이를 낳으면 부모 나이 90살에 자녀는 60살이 된다.
젊은이가 노인을 부양하는 것이 아니라 노인이 노인을 부양해야 할 처지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50년에 생산가능인구(15~64세) 100명당 고령인구(65세 이상)가 72명에 달할 전망이다.
이는 세계 평균(25명)은 물론 선진국 평균(45명)보다도 훨씬 높은 수치다.
'사회 안전망'도 다시 점검해봐야 한다.
세계 최고의 고령화 속도로 인해 우리나라의 국민연금 고갈은 이제 시간문제다.
그나마 당초 2047년 고갈될 예정이었던 국민연금의 '수명'을 이달 초 법 개정을 통해 2060년까지 연장해 놓은 수준이다.
물론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는 법.국민연금 고갈 시기가 미뤄진 대신 국민들이 받게될 연금 급여(평균소득자가 40년 가입했을 때 기준)는 현재 평균소득의 60%에서 2028년에는 평균소득의 40%로 낮아진다.
국민연금만으론 노후 대비를 끝내기 힘들다는 소리다.
실업구제책도 마찬가지.지금도 이미 이태백(20세 태반이 백수),사오정(45세 정년),오륙도(56세까지 회사 다니면 도둑)란 말이 나오는 상황이다.
하지만 실업대책은 미흡하기 짝이 없다.
현재 우리나라는 모든 사업장에 고용보험이 적용되고 있지만 실제 가입자는 전체 임금 근로자의 절반 수준이다.
실업급여 수급률도 25% 정도로 미국(36%) 일본(38%) 독일(44%) 등 선진국에 비해 훨씬 낮다.
이 밖에 △경제성장 과정에서 생긴 대기오염이나 수질악화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상이변 △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적 불안 △전세계적으로 종교나 문화를 둘러싼 종족간·국가간·인종간 갈등과 테러 위협도 100세 시대를 사는 인간에게 치명적 위협이 될 수 있다.
국제연합(UN)이 1994년 국가안보라는 개념을 뛰어넘어 인간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인간안보(Human Security)'라는 개념을 마련한 것도 이런 의미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인간은 생물학적으로는 포유류지만 다른 포유류와는 질적으로 다르다고 한다.
유전적으로 인간과 가깝다는 침팬지도 인간에 비할 바는 못된다.
지능이나 언어 같은 고차원적 능력을 차치하고 순전히 생물학적으로 비교해봐도 그렇다.
침팬지의 수명(30~40년 정도)이 인간보다 짧다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인간과 침팬지를 가르는 결정적 차이는 바로 미래에 대비하는 능력이다.
서울대공원 노정래 박사(연구실장)는 "침팬지는 늙었을 때 어떻게 해야겠다는 개념이 없다.
굳이 대비라고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겨울을 나기 위해 여름이나 가을에 먹이를 숨겨두는 정도다.
반면 인간은 노후를 대비한다"고 말했다.
인간수명 100세 시대가 눈 앞에 다가온 지금,미래에 대비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침팬지와 얼마나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입력: 2007-07-26 18:08 / 수정: 2007-07-30 1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