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시장을 분석하는 방법 중에 엘리어트 파동이론이라는 것이 있다.
엘 리어트 파동은 어지간히 주식밥을 먹은 사람들은 모두 한 번쯤은 관심을 가져 보았을 터인데 그 관심의 크기만큼 실망의 경험도 클 것이다. 이 이론은 과거의 주가를 그려놓으면 기가 막히게 맞아 떨어지는데, 대신 향후 주가를 예측하는데는 도통 먹혀들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애초에 이론이 잘못된 것인지 아니면 이론은 훌륭한데 이해를 잘못한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그래서 필자는 파동이론은 ‘신’에 대한 믿음과 같다고 말하곤 한다.
유 신론자들과 무신론자들의 대립을 보면 유신론자들은 이 오묘한 자연의 질서가 과연 우연의 결과 일 수 있겠느냐고 한다, 이 넓은 우주에 오직 하나 지구위에 핀 생명들이 이렇게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것이 우연으로 일어난 것이라는 것이 말이되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다윈주의를 내세운 무신론자들은 그것은 자연선택의 결과, 즉 진화의 결과일 뿐 애초의 출발은 몇 가지 무기물의 화학반응일 뿐 이라고 말한다.
그 에대해 유신론자들은 설령 그 말이 맞다손 쳐도 ( 진화론이 옳다고 쳐도) 그 최초의 유기물은 창조가 아니라면 어디서 온 것이냐고 반문하고, 무신론자들은 다시 신이 창조한 것이라면 그 최초가 왜 지금의 모습으로 출발하지 않고, 하필이면 수소화 헬륨, 그리고 강력등을 포함한 몇 가지 물리법칙 일 뿐이었느냐고 반박한다.
우리가 신이 아닌이상 이런 논쟁은 끝이 없고 답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불가지론이라는 희안한 주장이 등장한다. 어차피 인간의 인식은 제한적이므로, 인간이 알 수 있는 범주를 벗어난 초자연적인 부분은 이성으로 파악 할 수도 없고 알려고 할 필요도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점에서 필자는 파동이론에 대해 불가지론적 입장과 비슷하다.
왜 냐하면 파동을 주장한 엘리어트의 주장은 결코 미래의 가격을 알 수 없으니 엉터리이고, 대신 과거의 괘적을 설명하는데는 이만한 수단도 없으니 엉터리가 아닐 수도 있다. 어쨌거나 그만큼 파동이론에 대한 논쟁도 끝을 낼 수가 없다, 하지만 이점은 파동이론의 창시자인 엘리어트도 분명히 의식했던 것이 분명하다.
그는 파동이론을 다룬 책의 제목으로 ‘우주 의 원리’라는 지독하게 현학적이면서, 또 오만한 제목을 붙였는데, 이것은 그만큼 ‘믿지 않으면 믿을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세 상에 모든 가격이란 오르다가 내리고 다시 오르는 것이 정상일진데, 그것이 봄여름가을겨울이나, 낮과 밤의 교대처럼 순환적이고 주기적인 대대관계에 있는 사실을 가격논리에 차용했으니, 그는 분명히 사기꾼이거나, 과대망상가임이 틀림없다. 더구나 이런 시도가 엘리어트 한사람만이 아니고, 매리맨이라는 사람이 점성술을 빌려 주장한 M-N 파동이론이나, 일본사람 기자모리의 7파동 이론도 그 맥을 같이 한다는 점에서는 같은 범주에서 볼 수 있다.
어쨌거나 그가 설명하는 파동의 순환논리는 지극히 단순한 물리학적 이치에 다름 아니다.
우주에 지구라는 행성이 있었고, 이 행성은 목성이나 다른 행성과는 달리 중력도 적당하고, 괘도도 원에 가까운 타원을 그리고 있는데다, 달이라는 적당한 크기의 위성을 거느리고 있으니 어찌 자연의 질서가 규칙적이지 않겠는가?.
그 가 만약 헬리혜성이나, 은하계의 다른별에서 자연현상을 관찰 했다면, 그의 파동은 미친듯이 움직이고 날뛰는 해괴하고 불규칙한 오실레이션이라고 말 했을 것이다. 그는 그저 이 넓은 우주에서 단지 지구의 자연현상하나를 우주의 원리인양 주장하고, 사물의 모든 이치가 그렇듯 주가도 이치를 따를 수 밖에 없다고 주장했으니 그야말로 20세기 최고의 몽상가 였을지도 모른다.
무모한 원리는 원리가 아니다.
더 구나 그가 주장한 파동이론은 여러면에서 많은 부작용을 낳았다. 파동원리의 전문가라고 등장해서 혹세무민하는 추종자들이야 그렇다치고, 일반 투자자들도 1.618 배니, 2,618 배니 하는 피보나치급수들을 줄줄이 외고, 가격에서 상승의 한계와 바닥의 지점을 찾으려는 시도를 그것으로하게 만들었다.
이것의 결정적인 해악은 바로 그점에 있다.
즉 가격의 논리를 하나의 틀에 가둠으로서 통계의 범주를 벗어난 가격의 움직임에 투자자들이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하게 만든 잘못이 가장 크다는 말이다,
이 것은 지난주에 얘기한 ‘통계의 범주’라는 말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예를들어 주가의 최대 상승가능성을 기껏 1.618배니, 혹은 하락 조정의 크기를 피보나치 급수를 적용해서 33%니 61%니 하는 범주에 가둠으로서, 투자자들이 정작 그것을 벗어나는 상승과 하락에 큰 이익의 기회를 놓치거나, 혹은 큰 손실의 기회를 만들어 주게 된 것이다.
주가는 모든 사람들이 확률적 범주에 기댈 때 그것을 벗어나는 움직임으로서 큰 폭의 수익을 주는 것이다,
보 통 장기투자자가 이익을 내는 원리도 바로 이점 때문이다. 장기투자자들은 확률의 범주( 예를들면 1파동 다음 3파동은 그것의 1.618배의 크기를 가진다고 하자)를 무시하기 때문에 이 확률적 범주를 벗어나는 순간의 결정적 이익을 모두 향유한다. 하지만 범주에 익숙한 투자자들은 1파동 후 조정의 바닥에서 매수를 하고 그 파동의 최고점에서 매도로서 이익을 취한다는 가정을 하더라도 많아야 2배의 수익을 내는 것이 고작일 뿐이다.
그 래서 기술적 분석가들의 수익은 주가가 횡보를 하거나 안정적인 추세를 가지는 70%의 구간에서는 장기투자자들이나 우매한(그들이 보기에) 투자자들의 그것보다 이익이 크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훨씬 긴 기간이익을 취한다, 만약 일 년을 투자하면 그들은 8-9 개월간 장기투자자들의 그것보다 작은 이익이 자주 나고 누적 이익도 크다,
하지만 주가가 통계의 범주를 벗어나서 급등하는 순간에 그들은 이익이 고정된다.
하 지만 우매하고 엉덩이가 무거운 투자자들은 짧은 기간에 큰 이익을 누릴 수 있게 된다. 물론 최종적으로는 양측이 다 별로 이익이 남지 않는다. 이유는 장기투자자들 역시 큰 이익을 취한 다음 가격의 상승이 끝나고, 다시 조정국면으로 들어 설 때도 이익실현을 하기 보다는 2배 다음에는 4배 그 다음에는 10배, 그다음에는 20배라는 믿음으로 계속 버티기 때문이다.
하락 할 때도 마찬가지다,
장 기투자자들은 애시당초 얻은 이익을 도로 가져다 바치는 것으로 끝나지만, 기술적 분석가들의 손실은 작은 이익 후 큰 손실로 이어지기가 십상이다, 이유는 조정을 예상하고, 매수를 한 자금을 손쓸 틈 없이 갭 하락 한 가격에서 매도하기란 사람의 이성으로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즉 기술적 분석가들이 가격이 상승 할 때 팔기란 손바닥을 뒤집기보다 쉽지만, 손절매의 선을 순식간에 벗어나는 순간급락하는 가격에 맏닥트릴 때는 순식간에 큰 손실을 입게되기 때문이다. 100번을 충실한 손절매와 이익실현을 통해 성공 했다고 해도, 그야말로 확률적 범주를 벗어나는 갭 하락에는 그들 역시 되돌림이라는 기술적 현상을 기다리다가 죽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장기투자를 하건, 단기투자를 하건, 기술적 분석이건, 저평가 우량주건간에 개인 투자자들이 이익을 낸다는 것은 황소가 암소가 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것이다.
우 리는 시장에서 이런 사례를 자주 만난다, 예를들어 첨단 금융공학의 산물인 보조지표들을 살펴보면, 그 지표들은 모두 가격의 움직임들을 평활해서 통계를 낸다, 이때 통계의 핵심은 고점과 저점, 즉 매도와 매수의 지점을 찾는데 치중된다.
그래서 이런 지표들은 대개 과열과 침체, 혹은 매도와 매수의 시기를 비교적 정확히 알려주지만, 정작 문제는 이런 통계의 범주를 벗어나는 1-2 %의 예외적 움직임은 무시하는데 있다.
그리고 당연히 이런 예외적 순간이 시장에서는 가장 결정적인 순간이다. 때문에 시장의 논리는 기술적 분석이건, 가치분석이건간에 방식의 문제가 아니라, 활용의 문제로 귀결된다,
즉 시장에서 모두가 아는 투자법들은 시장의 평균논리이지만 시장에서 승자가 되는 사람의 수는 평균이 아니라 예외적이라는 점에 이라는 것을 이해해야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다들 확률적 범주에서 거래를 하고 있을 때, 오히려 그 범주를 벗어나는 지점을 알기위해 노력하는것이 분석툴들을 제대로 활용하는 것이라는 역설이 필요한 것이다.
2007/8/28 시골의사